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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6년 6월호][말씀과 삶][성경 칼럼]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는가_김경집
제목 [성서와함께 2016년 6월호][말씀과 삶][성경 칼럼]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는가_김경집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6-08-08 16: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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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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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6년 6월호][말씀과 삶][성경 칼럼]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는가



성경 칼럼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는가



김경집 바오로




선거가 끝났다. 분노한 민심은 준열하게 심판했다. 여당의 패배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당으로서는 그 정도면 선방이다. 도대체 집권 이후 무엇을 제대로 했는가? 걸핏하면 민생 운운하고 경제 활성화를 외쳤지만, 보수 정권 8년 동안 400조 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붓고도 삶의 질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돈은 모두 국민이 갚아야 할 세금이고 빚이다. 책임져야 할 일에는 나 몰라라 내빼고 조금이라도 생색낼 일에는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청년들은 절망하고 기성세대는 불안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상위 1%에 속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의 삶이 온전한가? 그런데도 여당은 야권 분열의 호기를 무기 삼아 오만과 탐욕만드러냈다. 대통령은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호위무사들만 챙겼고 엉뚱하고 해괴하게도 ‘야당 심판’과 ‘국회 정상화’만 내세우며 선거운동을 대놓고 했다. 예전 대통령 탄핵의 빌미를 생각해 보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퇴행했고 정의는 실종되었으며 희망조차 사라졌다. 실패에는 변명과 호도로 일관했는데도 이 정도 의석을 차지한 건 감지덕지할 일이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반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위대한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누구를 탓할 것 없다. 우리 모두 탐욕에 눈멀어 연대는 팽개치고 자기 안위만 챙겼다. 그 결과 악은 전횡하고 정의는 조롱당했다. 그리고 미래마저 망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순치되었다. 유신 시대보다 더 퇴행적인 정치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교회도 신자도 그 야만과 퇴행에 입을 다물었다. 아니, 입을 다무는 데 그친 게 아니라 그 횡포를 정당화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거나 발길질까지 해댔다. 그건 교회가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신자들은 복음정신의 핵심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의 축복과 안위만 기도하는 비겁을 체화한 것이다. 그나마 세월호 집회와 미사, 강정마을과 쌍용자동차 사태를 통해 자비와 연대를 보여 준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있었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파멸시키지 않겠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느님의 언약처럼, 그들이 있어서 덜 부끄러웠다.


‘헬조선’이나 ‘흙수저’ 같은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좌절과 절망이 자신의 모자람 때문이라고 자책하던 청년들이 그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 부패한사회 때문이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충족할 행복이 식욕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먹방’에 이어 최근에는 ‘집방’이 나왔다. 예전처럼 크고 멋진 집 꾸미기가 아니라 옥탑방과 반지하 방을 꾸미는 것인데, 이것은 계층의 이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 헛된 꿈 꾸지 말고 현재의 공간이나 잘 꾸며서 마음이라도 붙이라는 의미다. 이런 순치가 근본적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어차피 깰 건 깨고 태울 건 태워야 한다. 그래야 산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다. 종교가, 교회가, 신자가 신앙과 복음의 정신을 제대로 깨닫고 예수님의 정의를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기만 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교회와 신자의 성찰과 변화는 미래 희망의 씨앗이 며 뿌리다. 그런데도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와 타협하며 약자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데에 오히려 힘을 보태 준다면 결코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마태 12,37)라는 말을 추상秋霜같이 새겨야 한다.


금은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니 스스로 중산층이라 자위하고 있지만 실직하면 머지않아 빈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과 약자들은 아예 그런 안정된 삶을 맛볼 기회마저 없다. 복지나 사회안전망도 미비하다. 신자 대부분의 삶이 그렇다. 교회는 복음정신에 입각한 실천적 정의를 천명하고 탐욕스러운 소수 강자를 따끔한 가르침으로 깨워야 한다. 그들이 교회에 충성하고 경제적으로 기여하며 권력으로 도움을 좀 준다고 환호작약하며 떠받드는 행위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장로라고 대통령으로 뽑아 주는 한국 개신교의 민낯을 똑똑히 보았다. 가톨릭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복음적 정의를 외쳐야 신자들도 각성하고 불의를 배척하고 정의를 세워 미래를 밝힐 수 있다. 교회와 신자들만 정의를 외치고 실천해도 대한민국이 바뀐다. 이 얼마나 대단한 바탕인가! 그런데도 그걸 외면하는 건 시대 정신을 거부하는 것이고 미래를 죽이는 일이다. 더는 늦추거나 주저할 일이 아니다.


복음적 정의를 선언하고 실천하는 데도 대체 무엇을 더 따져야 한단 말인가?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혁명의 단초다. 임계점을 넘었고 끝없이 추락하다 바닥에 처박히면서 겨우 깨어난 분노의 표심이었다. 혁명의 불씨는 얻었지만, 불길은 언제 꺼질지 모른다. 지금 이 탐욕과 무지, 그리고 불의를 뿌리째 뽑아내지 못하면 불길은 쉽게 꺼질 것이다. 이 혁명의 불길을 교회와 신자들이 들불처럼 번지게 해야 한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던 교종의 말씀은 비단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만 던진 메시지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침몰하고 있다. 이러다 다 죽는다. 존 F. 케네디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 이렇게 말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에게, 교회에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다.

 



김경집 님은 인문학자이자 작가이다. 25년 동안 배우고, 25년 동안 가르치고, 25년 동안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하려는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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