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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5월호][말씀이 내게 왔다]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_이기옥 기자

작성자 성서와함께(ip:)

작성일 2017-04-17 15: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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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성서와함께 2017년 5월호][말씀이 내게 왔다]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_이기옥 기자



말씀이 내게 왔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8,48)



어린 시절, 집안 가득한 종교 서적을 즐겨 읽고 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는 제혜숙(마리아, 68세) 님. 어른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지만, 말씀과 성모님이 늘 함께해 주시며 삶을 이끌어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기옥 기자




나를 부르신 성모님

아주 어렸을 적엔 가족이 개신교회에 다니기도 했다는 제혜숙 님. 하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천주교 신자다.


“저희 집안의 천주교 신앙은 친할머니 덕분에 시작됐어요. 친할머니가 천주교 신자가 되시면서 가족이 천주교를 믿게 됐거든요. 친할머니께서 ‘참 종교는 천주교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말씀이 어린 마음에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다. ‘어머니’ 하면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시던 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하지만 제혜숙 님은 성인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작심한 것은 결혼을 앞두고서였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거든요(웃음). 그 욕심에 어머니께 세례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성모님이 널 부르셨구나’ 하셨어요. 제 세례명인 ‘마리아’도 어머니께서 정해 주신 거예요. 살면서 성모님의 사랑을 느낄 때마다 그 말씀이 떠올랐어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8,48)

결혼하고 세례받자마자 서울로 이사해 청담동 성당에 다녔다. 당시에는 청담동 성당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서도 한 30분 정도 걸어서 구릉을 넘어가야 했다. 애 봐 줄 사람이 없어 애를 업고 다녔는데,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바람을 헤치며 걷는 게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제혜숙 님은 성당을 향해 가는 그 길이 너무도 좋았다. 그 길을 걸으며 늘 되뇌었던 말씀이 바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이다.


“사실 전 이 구절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로 기억하고 있었어요. 아마 당시 제 삶이 너무 팍팍해서 믿음만이 날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몸은 힘들어 늘 아팠고, 박봉으로 시댁까지 부양하며 사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미사만이 큰 위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 후에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는데 누군가가 “레지오가 얼마나 은총이 많은데”라는 말을 했다.


“그때 ‘은총’이라는 말이 천둥·번개처럼 제게 확 꽂혔어요. 순간, ‘나도 그 은총 좀 받고 싶어!’라고 속으로 소리쳤지요. 그런데 얼마 후 레지오 단원들이 가정방문을 왔어요! 기회다 싶었죠. 그때부터 하루도 안 빠졌어요. 애들 봐 줄 사람이 없어 애들까지 데리고 다녔어요. 은총받고 싶어서요(웃음).”


레지오 첫날, 다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드리는 그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행복했다. 그때 성모님의 사랑을 깊이 느꼈고, 레지오 가는 날만 기다리며 일주일을 견뎠다.


일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천주교 신자가 된 것

남편의 전근으로 서울과 지방과 국외를 오가던 제혜숙 님은 지금 과천에 산다. 이전 성당에서 했던 성경 공부를 이어 가고 싶어 다시 그룹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수원교구 성경 경시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이를 눈여겨보신 본당 수녀님이 말씀봉사자 활동을 제안하셨고 그때부터 그룹 공부 봉사자로 활동했다.


“그간에 제가 겪었던 여러 고통 덕분에 그룹원들이 모임에서 나누는 아픔들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위로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씀 봉사가 내 천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레지오 활동도 시작했다. 단장으로서 첫 주회에 참석한 날,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회합을 시작하려는데 앞에 놓여 있던 성모상에서 향기와 함께 어떤 기운이 뿜어져 나와 제게 왔어요. 그러더니 그것이 하나씩 단원들에게로 가더군요. 그때 생각했어요. ‘이 회합을 내가 하는 게 아니구나!’ 또 그 순간 단원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깨달았죠. 단원들이 보배였어요.”


늘 기도하셨던 어머니처럼 제혜숙 님도 매일 드리는 기도가 있다. 산책이나 외출 중에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하늘마마’라고 호칭 기도를 한다. 하늘마마는 제혜숙 님이 성모님을 부르는 애칭이다.

  “이 기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뭉클한 사랑이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옵니다. 성모님께서 늘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저를 돌봐 주고 계심을 느낍니다.”


십수 년 전 제혜숙 님은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암이니 이제는 죽겠구나 했던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마치 임종 준비를 하듯이 제 삶을 되돌아봤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고 살았는지를요. 매년 김치를 보내 주시는 사부인부터 평생 저를 돌봐 주신 성모님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감사할 일이 넘치고 넘쳤습니다. 친할머니가 ‘참 종교는 천주교인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저는 일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받은 것들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제혜숙 님은 16년 동안 말씀 봉사를 하였으며, 과천성당 말씀 봉사자 대표(2016년)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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