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월간 기사 게시판

월간 기사 게시판

월간 기사 게시판입니다.

[성서와함께 2016년 10월호][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스물한 번째 편지)]우리의 코리토, 올드버스팍_김영희
제목 [성서와함께 2016년 10월호][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스물한 번째 편지)]우리의 코리토, 올드버스팍_김영희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6-10-06 18:44:41
  • 추천 3 추천 하기
  • 조회수 298
  • 평점 0점

 

[성서와함께 2016년 10월호][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스물한 번째 편지)]우리의 코리토, 올드버스팍_김영희



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스물한 번째 편지)




우리의 코린토, 올드버스팍



김영희 젬마루시


네팔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손꼽히는 포카라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입니다. 10월과 11월에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름답고 성스러운 산 마차푸차레를 비롯하여 안나푸르나 봉들이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지고 멀리 다울라기리와 마나슬루 등 8000m가 넘는 고봉들도 보입니다. 안나푸르나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모여 생긴 깊고 푸른 페와 호수는 이 도시를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으로 만듭니다. 포카라가 ‘연못’, ‘호수’라는 네팔어 ‘포카리’에서 유래된 지명일 만큼 페와 호수는 안나푸르나 히말과 함께 이 도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네팔 지진으로 방문객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안나푸르나 등반의 시발점이 되는 포카라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등반객들로 북적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대도시가 빈민가를 안고 있듯이 이 아름다운 포카라에도 예외 없이 거대한 빈민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빈민 10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올드버스팍이라는 스쿰바시 동네입니다. 스쿰바시(Sukumbasi)란 ‘땅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데,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임시로 내어 준 땅에 형성된 빈민가를 말하기도 합니다.


프리티비촉 올드버스팍에 있는 스쿰바시는 포카라가 아주 작은 도시였던 25-6년 전에 이곳의 깊은 계곡 주변 밀림 지역을 개간해서 살도록 허락된 땅입니다. 땅이 없던 가난한 이들이 이곳을 개간해서 살아왔는데, 특히 2006년까지 네팔 서부 산간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네팔 반군 공산당 무장 게릴라들의 위험을 피해 내려온 산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곳 인구가 더 많아졌습니다. 안나푸르나 히말이 잘 보이는 이 동네는 쪽방들이 늘어선 빈민가이지만, 인근에 공항이 있고 점차 상업적 요지로 변모하고 있기에 이곳 주민들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건기에는 네팔 대부분이 물 부족과 정전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무허가 쪽방들이 밀집한 이곳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합니다. 사실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과 우기에 내리는 엄청난 양의 비를 계곡이 품고 있다가 곳곳에 수많은 강을 만들어 내는 네팔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건기에는 카트만두를 비롯해 전국에 물 공급이 잘 안 되고 14시간 이상의 정전을 견뎌야 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물이 많은 나라가 물 부족, 전기 부족을 겪는 아이러니는 네팔의 빈곤한 정치 구조가 빚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와 답답함을 이곳 올드버스팍에서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조금 불편할 뿐 타고난 낙천적 기질로 태평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수녀들은 2009년, 네팔 선교를 시작하면서 포카라 인근 산골 마을에 이동 진료를 하는 ‘생폴 모바일 클리닉’을 열었고 올드버스팍 스쿰바시에서도 방문 진료와 함께 가난한 어린 이들을 위해 ‘생폴 해피홈’이라는 공부방을 운영해 왔습니다. 흙바닥 같은 방 한 칸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모여 살고 잦은 정전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어린이 100여 명이 매일 방과 후면 곧장 해피홈으로 와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합니다. 참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가난한 환자들과 어린이들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수녀들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또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신앙을 적극 권할 수 없는 사정이지만 토요일이면 50-60명의 해피홈 어린이들이 포카라에 하나밖에 없는 성당에 와서 함께 기도하고 돌아가는 모습도 커다란 위로입니다.


갖가지 사정으로 이곳에 흘러들어 온 가난한 사람들, 힌두교도, 티베트불교도, 그리고 그 안에 상당히 많은 개신교회 등 갖가지 종교만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주민들과 만나면서 늘 새로운 체험을 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소아시아 각지에서 항구 도시 코린토로 모여든 장사꾼들, 노동자들, 다양한 신분의 남녀들을 만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 결실을 보는 가운데 바오로가 겪었을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이 무엇이었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강인하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바오로였지만, 그는 미성숙하고 닫힌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따뜻한 동정심을 가졌고 더 약한 형제들을 배려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자기부정도 기꺼이 감내할 의향이 있던 사도였습니다(1코린 8,9-13 로마 15,1-2). 사실 바오로는 늘 “믿음이 약한 이”의 편에서(1코린8,1.7-13),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했으며(1코린 9,19-23), 자신의 권위를 그들을 키우는 데 사용한 선교사였습니다(2코린 12,19 13,10). 무엇보다도 유다인의 특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 약자인 이방인들에 대한 배려는 그가 받은 특별한 사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려고 한 결과일 것입니다(필리 2,1-11).


이러한 마음에서 그는 성령의 은사도 풍성하게 받았지만, 파벌과 분열(1코린 1,10-17), 음행과 우상숭배(1코린 5,1-6,208,1-13), 바오로의 사도권에 도전하는(1코린 9,1-27 2코린 10,1-12,18)등 문제도 많았던 교회, 바오로를 괴롭히고 눈물도 흘리게 했던(2코린 2,1-4 12,21) 코린토 교회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뜻을 알아듣는 데 더디기만 했던 그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는 데 온 마음을 쏟았고 그것이 바로 코린토 교회에 보낸 그의 두 편지 안에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에 오래 머물면서(18개월) 그들에게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고 노력하였습니다(1코린 16,5-8). 마음에 복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들 곁에 함께 현존하는 이것이 바로 그의 기쁨이며 고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오로의 이런 모습은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시골 신자들 곁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이 남기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선교란 무언가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그들은 나의 도움이 없이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단지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존재감을 주기 위해 나에게 그들이 필요할 뿐이다”(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김영희 수녀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소속으로 네팔의 포카라 빈민가에서 어린이 공부방(St. Paul Happy Home 생 폴 해 피홈)과 방문 진료소(St. Paul Mobile Clinic)에서 동료 수녀들과 일하고 있다. 《용서보다는 의화》라는 책을 저술했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수정 취소

/ byte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관리자답변보기

확인

/ byte


*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장바구니 0

최근본상품

이전 제품다음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