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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샬롬 필리핀]새 술은 새 부대에, 당신 사랑은 그분의 품 안에_이상원
제목 [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샬롬 필리핀]새 술은 새 부대에, 당신 사랑은 그분의 품 안에_이상원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7-02-22 13: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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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샬롬 필리핀]새 술은 새 부대에, 당신 사랑은 그분의 품 안에_이상원


샬롬 필리핀



새 술은 새 부대에,


당신 사랑은 그분의 품 안에



이상원 베다


1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한 후, 선교 사제로서 처음 머문 곳은 이토곤(Itogon) 지역의 한 본당이었다. 험한 산세 때문에, ‘이토곤’은 필리핀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늦은 시기인 1909년에야 비로소 선교사들을 통해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곳이다. 정식으로 발령을 받기 전, 선교지 생활 체험을 위해 손님 사제로 그곳 본당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이토곤 사람들의 첫인상은 무뚝뚝했다. 외국인 사제를 반갑게 맞기는커녕 멀뚱멀뚱 쳐다만 보던 원주민 신자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 ‘앞으로 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첫인상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화장실이었다. 한 평도 안 돼 보이는 작은 공간에 뚜껑 없는 변기처럼 보이는 것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볼일을 봐야 할지 고민스러워서 한참을 서 있었다. 결국 엉덩이는 공중 부양을 시키고, 허벅지에 힘을 잔뜩 준 채 엉거주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자세로 볼일을 보아야 했다. 차라리 우리나라 시골의 푸세식(재래식) 화장실 같으면 좋으련만 이도 저도 아닌 그 이상한 화장실은 내가 적응해야 할 산골 생활의 시작이었다.


9개월 후, 그곳 사람들이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남사스러워서 차마 묻지 못했던, 변기 옆에 늘 놓여 있던 물 양동이가 휴지 대신임을 알았다. 문화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원주민들을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내 섣부른 자신감이 기초부터 무너지는 듯했다. 화장실 갈 때마다 부산스럽게 꼭 휴지를 찾아 들고 가는 내가 원주민들에게는 얼마나 특이해 보였을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토곤 사람들이 나를 반겨 주지 않았다는 오해는 2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정식 발령을 받고 ‘깐까나이’(Kankanaey) 부족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이 ‘이토곤’ 신자들과 아주 다르다는 걸 알았다. ‘깐까나이’ 신자들은 매우 직설적이었다.


일례로,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깐까나이’ 부족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맵다는 것을 숨기지 않지만, ‘이발로이’ 부족(이토곤 사람들)은 눈시울을 훔치면서도 맵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한다. 그제야 이토곤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들의 그 데면데면했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부족끼리도 자기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외국인 신부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속마음은 잘 드러내지 않지만 속정은 아주 깊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들과 살면서 나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많이 조심하게 됐다. 이토곤의 현지 음식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매운 고추가 너무 먹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혹시 이 근처에 고추가 자라는 데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매운 고추를 구해 달라는 말은 못 하고,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인데, 사흘쯤 지나 몇몇 신자분이 큰 포대 자루 하나를 들고 오셨다.


선물이라며 그것을 성당 마당에 내려놓고 급히 가셨는데, 그 자루를 연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평생 먹고도 남을 만큼의 새빨간 칠리 고추가 한가득 있었다. 그 많은 고추를 어디서 구하셨는지…. 그 엄청난 양의 고추가 그들의 풍성한 사랑으로 내게 다가와 뭉클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서로를 위하는 그 사랑으로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새 가죽 부대의 예화(마태 9,14-17)처럼 포도주 같은 신자들의 진한 사랑의 마음을 담기 위해 새로운 정신, 새로운 마음이란 새 부대를 마련해야 함을 깨달았다. 평생을 늘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만 하는 선교사의 삶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바로나 자신의 부족한 사랑을 원주민 신자들을 통해 완성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과 문화가 다른 신자들과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것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신자들이 신부인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아픔이든 기쁨이든 속내를 드러낼 수 있다면, 적어도 그들과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사제, 그들의 아픔을 만져 줄 수 있는 사제로 그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이사58,11).



이상원 신부는 한국외방선교회 소속으로 2007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현재 필리핀의 바기오 교구에서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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