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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노년기 영성을 말하다]노년의 여행 가방 준비
제목 [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노년기 영성을 말하다]노년의 여행 가방 준비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7-02-24 15: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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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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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노년기 영성을 말하다]노년의 여행 가방 준비



노년기 영성을 말하다





노년의 여행 가방 준비




김효성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 삶에서 그것을 찾으면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특히 나이가 든 후에 지나온 삶을 기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남은 삶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종종 우리는 나이 든 노년의 얼굴에서 밝은 미소가 번져 나오는 것을 목격하는데, 이는 주위의 젊은이들에게도 삶을 격려하는 증거가 되기에, 노년의 미소는 더없이 진실하고 소중하다.




몇 년 전, 서울대교구 신부님 한 분이 ‘아름다운 장례’를 주제로 주일 강론을 하셨다. 내용은 94세 암브로시오 할아버지 장례미사를 주례하며 받았던 감동에 관해서였다. 그 미사에서는 파견성가로 가톨릭 성가 402번 <세상은 아름다워라>를 불렀다. 흔히 장례 때 부르는 슬픈 곡이 아닌 밝은 찬미의 곡을 부르면서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서 기쁨 같은 것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를 잘 알지만, 당시 여건으로 그 미사에 갈수 없었던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서, 신앙에 기반을 두고 사셨던 할아버지가 미사에 온 사람들에게 부활의 빛과 희망을 마지막으로 전해 주신 것처럼 다가왔다. 여기에 암브로시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대로 전하고자 한다.


만주 연길 태생으로, 해방 후 부인과 함께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와 아들딸 여섯을 두셨던 할아버지는, 80대 후반부터 ‘할머니·할아버지 살아온 이야기’라는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 외국에 사는 어린 손녀딸들에게 들려줄 요량으로, 할아버지는 지난날들을 한 장면 한 장면 돌아보며, 거기서 의미 조각들을 건져 내어 글로써 손녀딸들에게 전하셨다.


할아버지는 90세 넘어서도 혼자 목욕할 정도로 정정하셨다. 그런데 어느 초가을 날, 더는 당신 몸을 스스로 관리할 수 없게 된 것을 알아차리신 뒤, 노인요양병원으로 옮겨 가 살기로 결정하셨다.

요양원에 몇 차례 찾아가 뵐 때마다 할아버지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로 반가움을 전하셨고, 대화 중에는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쓸쓸함과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있는 그대로 말씀하셨다.


외국에 있는 둘째 딸과 손전화를 하실 때, 할아버지는 딸과 사위, 증손주까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관심과 사랑, 염려와 기대를 드러내셨다. 그즈음 할아버지는 먼저 가신 할머니를 꿈에 뵈었노라 하셨다.


할머니께서 아름다운 동산에 계셨고 주위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었는데, 할아버지께 어서 오라고 손짓하셨단다. 할아버지가 “어서 가고 싶으니, 잠시 기다려 줘요. 곧 여행 가방을 챙겨 오겠어요”라고 말하자 꿈에서 깨어났다고 하셨다.


며칠 뒤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오셨던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청하고 성체를 영하며 병자성사를 받으셨는데, 성사를 마치고는 끝 성가를 부르겠다고 하셨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로 시작하는 성가였다(가톨릭 성가 402번<세상은 아름다워라>). 할아버지는 가사를 틀리지 않고 또렷이 외고 계셨다. 흔들리듯 나지막한 음성이었으나, 일생을 지탱해 준 신념을 고백하듯 얼굴은 어떤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으신 채 허리를 굽혀 인사하셨다. “요셉신부님, 감사합니다. 제가 하늘 나라에 가서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리겠어요.” 신부님은 “정말이세요?” 하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미셨고, 두 분은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을 맞대며 약속하셨다.


이것은 내 눈으로 본 멋진 장면이었다! 기력이 무척 떨어진 상황에서도,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름답고 경건했다.


노년기 삶에 대한 연구자료 중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 수도회’의 양성문서에서는 연로한 자매들을 동반하는 데 가장 시급한 것으로, “마지막 여행에서 여행 가방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노인의 마지막 적敵은 질병이나 통증이나 장애가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며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전한다. 노년기여행을 위한 준비를 할 때, 마음속 여행 가방에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힘겹게 채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행의 분명한 목적지를 더 가까이 바라보면서 불필요한 짐들은 덜어 내고 마지막까지 지니고 갈 내면 자세를 가다듬어 오직 삶의 목표와 의미만을 간추려 담는 것, 그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희망으로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주위에서 만나는 이 마지막 시기의 여행자들에게도 그들이 살아온 의미와 목표를 잃지 않도록 신앙적·영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의학적·심리적 도움 못지않게 소중하다. 노 예언자 시메온은 갓 태어난 예수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외치지 않았는가!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29-30). 그는 오직 하느님이 주시는 희망으로만 살아왔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 초라할 뿐인 아기를 안고서 생명의 주인이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다.


암브로시오 할아버지는 결국 성 암브로시오 주교학자 축일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최종 목적지에 들어가셨다. 꼭 40일간 요양원에서 살다가셨는데, 희망으로 부활을 기다리는 참회의 사순 기간만큼이나 집중적으로, 긴 여행의 끝자락을 희망으로 준비하셨던 할아버지가 꿈에 본 대로 할머니를 만나셨기를 바란다.




김효성 수녀는 성심수녀회 소속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의 ‘통합적 인간양성 교육원’(IFHIM)에서 심리재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양성교육원’에서 남녀수도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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