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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4월호][노년기 영성을 말하다]인격에는 은퇴가 없다_김효성
제목 [성서와함께 2017년 4월호][노년기 영성을 말하다]인격에는 은퇴가 없다_김효성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7-03-13 17: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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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7년 4월호][노년기 영성을 말하다]인격에는 은퇴가 없다_김효성




노년기 영성을 말하다





인격에는 은퇴가 없다


-60대의 새로 배우기



김효성




흔히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말하는데, 자연에도 인생에도 적용되는 원리인 듯하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채소는 요리하기 좋고, 사람도 철이 들면 말이 통하여 좋다. 구약성경도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고 가르치는데, 예수님도 때를 분별하시려는 모습이 복음에 엿보인다. 공생활 초기,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시는 어머니께“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하고 첫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공생활 마지막, 제자들과 겟세마니에서 기도를 하던 끝에는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 일어나 가자”(마르 14,41-42)고 하신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적절한 때를 깨닫고 따르는 것이 늘 순조롭지는 않다. 특히, 평생 일해 온 자리에서 어느덧 물러나야 할 때가 다가오면, 이를 맞이하기가 누군들 쉬우랴. 그런데 보통 후기 성인기는 사실상 ‘은퇴 시기’를 경험하면서 시작되는데, 이 시기는 직종에 따라 달라, 공무원이나 큰 기관 종사자는 명백한 나이로 정해져 예상할 수 있고, 자유업이나 개인사업자는 여건에 따라 폭이 다양하다.


전업 주부들은 은퇴 시기라는 말을 적용하기조차 애매하다. 그런데 막상 일터에서 은퇴하면, 대부분 삶의 방식이 달라져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예상할 수 없이 갑자기 은퇴가 진행되었다면, 변화를 감당하기가 더 어려워 성격이 변하거나 이상해지기도 한다. 주변에서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은퇴는 ‘일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은퇴자는 ‘일의 기능이나 역할’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자기 인격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했던 직장에서 은퇴하지만, 자식과의 관계에서 은퇴가 있겠는가. 자녀들이 성장하여 어머니가 더 이상 식탁을 차리거나 집안 살림을 돕지 않더라도, 어머니로서 은퇴가 있겠는가.


이는 우리가 (생계를 위한) ‘일’에서 물러날 때도 (자기 성숙을 향한) ‘인격’에서는 물러남이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도 여러 전도활동에서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은 있었겠지만, 하느님에 대한 열정이나 사람을 향한 사랑에 때의 구분이 있었겠는가?


사실상, 일을 경제적 활동으로만 본다면, 중기 성인기에도 일자리가 없거나 빼앗긴 사람들이 많고, 후기 성인기까지 생계를 위해 숨 가쁘게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은퇴를 온당하게 언급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형편이다.


또 지나친 일 중심 사회에서 일과 인격을 구분하지 못해, 남 보기에 그럴듯한 일자리에 있는 것과 자기 인격을 동일시하는 착각도 허다하다. 기술과 능력, 화려한 스펙을 갖추어야 하는 경쟁시대에, 많은 후기 성인이 기술로써는 뒷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한편, 일을 경제적 활동 이상으로 본다면, 후기 성인기에는 여전히 할 만한 일들로 가득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왕성히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쟈닌 갱동(심리재교육학자)은 후기 인기에 하는 일들을 인격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봉사’라고까지 말했다.


금전적 대가가 꼭 주어지지 않더라도, 의무나 당위성이 아니라 인격을 담아서, 기꺼이 행복하게 해낼 일들이 있다. 일해 온 분야에서 닦았던 역량으로나, 완전히 새로운 일을 배워서도 할 수 있다.


쟈닌은 은퇴를 경험하는 60대를 ‘새로 배우는 시기’라 했는데, 이때 배우는 목표는 젊을 때와는 다르다. 마지막 인생의 3분의 1은 이제껏 알던 방식으로는 살 수 없기에, ‘일의 기능’보다는 ‘삶의 방식을 새로 배우기’가 목표다.


25년 전 로마에서 만난 파울라 수녀님이 떠오른다. 70대 후반의 수녀님은 넓지 않은 작업실에 들여놓은 작은 기계 앞에서 늘 털목도리를 짜셨는데, 실력이 전문가 이상이었다. 어느 날 수녀님은 내게 어울릴 만한 털목도리를 골라 주신 뒤 말씀하셨다. “나는 평생 여학생들을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단다.”


 이탈리아인이지만 꽤 멋진 영국식 발음으로 말씀하시기를, 피렌체의 성심학교에서 평생 영어수업만 했다며 주름진 굽은 손으로 당신 목을 가리키셨는데, 그 동작은 ‘목이 아프도록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교육업무가 꽤벅찼지만, 한 자리에 파견되면 끝까지 일했던 옛 수도생활에서, 수녀님은 힘을 다해 은퇴 시기까지 달렸다고 하셨다.


이제 그 업무에서 벗어나 조용히 목도리 짜는 작업을 할 수 있으니, 관상생활까지 된다며 행복해하셨다. 할머니가 되신 수녀님께 졸업생들은 털실을 선물로 드리곤 했는데, 그것으로 목도리를 짜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


먼저 사용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실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멋지게 색을 배합할지 등…. 찾아오는 졸업생 얘기를 다 들은 뒤, 그 아기나 가족을 위해 목도리를 짜시고는, 다음 만날 때 선사하셨다. 많은 졸업생과 가족들이 그 선물을 받았다고 하니, 수녀님께는 그 일이 사랑에 찬 관계를 지속하는 또 다른 형태의 교육활동이자 기도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삶은 끝까지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하다고 일러주시는 분이 더 있다.


관절염에도 ‘양말로 인형 만드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 배우시어, 갖가지 동물인형을 만들어 어린이, 젊은이에게 선사하시는 70대 비르짓다 수녀님, 털실로 부활 장식이나 성탄 구유를 꾸며 주위를 행복하게 하시는 82세 필 수녀님, 잡지나 달력의 꽃 그림을 오려 만든 카드를 영명축일 축하에 쓰라고 주시던 90대 나의 아버지까지….


분명 젊을 때와 나이들 때의 일은 다른데, 그 차이를 분별해 더 극진히 사랑하시니, 마음 담은 봉사와 사랑에는 은퇴가 없다며 후기 성인기를 시작하는 60대들에게 격려를 보내시는 듯하다.



김효성 수녀는 성심수녀회 소속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의 ‘통합적 인간양성 교육원(IFHIM)’에서 심리재교육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양성교육원’에서 남녀수도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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