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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6년 11월호][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아, 얼마나 아름다운 걸음인가!_김영희
제목 [성서와함께 2016년 11월호][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아, 얼마나 아름다운 걸음인가!_김영희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6-10-19 15: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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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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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6년 11월호][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예수님은 언제 오십니까?_박태식



선교지에서 읽는 바오로 서간-스물두 번째 편지




아, 얼마나 아름다운 걸음인가!



김영희 젬마루시



경작이 가능한 해발고도(2000m)를 훌쩍 넘어서는 랑탕 마을(3330m)은 티베트 타망족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랑탕 국립공원의 마지막 마을인 강진곰파(3730m) 가는 길에 있습니다. 대부분 힌두교도인 아래 지역과 달리 티베트 라마 불교도인 랑탕 마을 사람들은 트레커(trekker, 여행객)를 대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박하게 살아갑니다. 빙하가 덮인 고산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토양이 척박한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와 비슷하나 몸 아랫면에 긴 털이 나 있는 야크(yak)나 발목에 겨우 닿을 정도의 키 작은 식물들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척박한 토양에서, 거센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드넓은 벌판에 꽃을 피우는생명력은 단순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험한 히말라야 기슭에까지 흘러들어 와 자연과 씨름하며 살아 온 랑탕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모습 역시 - 메마른 땅에서 꽃을 피우는 꽃들만큼이나 - 이곳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해 줍니다.


그런데 지난해 네팔 대지진 때, 진원지와 가깝던 랑탕 마을은 순식간에 엄청난 빙하에 뒤덮였고, 온 마을 주민은 물론 당시 이곳에 머물던 수백 명의 외국인 트레커들을 비롯해 많은 가이드(guide, 여행 안내인)와 포터(porter, 짐꾼)가 사망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날 들판에서 야크를 돌보던 남자들, 밭에서 감자를 캐던 여인들뿐이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과 가족, 친척들을 잃은 이들은 카트만두와 인근 지역으로 피난했고, 그중 일부는 강진곰파로 돌아왔습니다. 화요일이라는 이름의 ‘락바’ 아주머니를 만난 곳도 이 강진곰파 마을입니다(티베트 사람들은 출생한 날에 따라 이름을 받는다고 합니다. 월요일은 ‘밍마’, 화요일은 ‘락바’, 수요일은 ‘다와’, 목요일은 ‘프러부’, 금요일은 ‘파상’ 등).


지난해 11월, 지진 피해 주민에게 지붕에 덮을 판넬, 시멘트, 그리고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라면을 전달하기 위해 강진곰파를 방문했습니다. 도보 길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던 터라 긴급복구를 돕는 헬기를 타고 도착해, 아주머니들이 정성껏 마련한 감자떡(주식이 감자)을 먹으며 사흘을 지냈습니다. 둘째 날 아침, 저는 락바 아주머니, 그리고 그분의 언니와 함께 이제는 사라진 아랫마을, 랑탕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분들 걸음으로 세 시간이면 다녀온다는 길을 저 때문에 다섯 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그날이 제게는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대지진 때 락바 아주머니는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기에 살 수 있었지만(인도 다람살라에서 스님으로 수도생활 중인 아들을 제외한) 모든 가족을 잃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슬픔을 품고도 선량하고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오고 가는 길 내내 저를 보살펴 주던 락바 아주머니의 친절한 마음 씀씀이에 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고, 야크를 돌보는 아저씨의 부서진 천막에서 따뜻한 우유를 데워 주기도 했던 두 아주머니는 걷는 내내 쉬지 않고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웠습니다. ‘옴 마니 반메 훔’(옴, 연꽃 속의 보석이여! 훔)은 티베트 불교의 중심이 되는 만트라(mantra, 기도 때 외우는 주문)입니다.


티베트 불교도들은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우면 모든 해로운 것을 물리칠 수 있고 자신과 타인이 함께 해탈의 길로 나아가며 지혜와 평화, 자비를 얻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인지 등에 봇짐을 지고도 열심히 주문을 외우며 걷는, 불심 가득한 그들의 모습에서 자비와 평화로움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랑탕 마을에서는 감자 농사라도 지을 수 있지만 강진곰파에서는 그나마도 어려워 여자들은 아랫마을 랑탕과 윗마을 강진곰파를 오르내리며 유일한 먹거리인 감자를 나릅니다. ‘특별한순례길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그 먼 길을 걸으며 ‘옴 마니 반메훔’을 외우는 기도의 힘으로 모든 고통과 슬픔을 승화해 가고 있구나! 그 안에서 저러한 아름다운 마음과 미소가 흘러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던 바오로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끊임없이 걸으면서 움직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1코린9,22) - 배를 타기도 하지만 - 대부분 걸어 다니며 로마 제국동부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 선교하였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로마 15,19-20). 1세기의 편치 않은 교통 편으로 십여년 간 세 번에 걸친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바오로가 움직인 거리는 총 16만km가 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수고와 옥살이, 매질, 파선,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등(2코린 11,23-26)과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 같은 수많은 난관(2코린 1,8-9)만이 아니라 그가 세운 교회에 대한 노심초사(2코린 11,28)와 자신의 병고(2코린 12,7) 등,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바오로는 불평하거나 찌부러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찬미하며 늘 기뻐하는(필리 1,18-19 2,17-18 4,4.6)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숙해 갔고, 가야 할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필리 3,12-14).


그것은에페소인들에게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 5,19-20)라고 권고한 그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늘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2코린 1,3)이신 그분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필리 2,5) 끊임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인도에 따라”(갈라 5,16) 살았기에, 그 어려운 선교 여정의 길을 기쁘게 걸었던 것 같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바로 걷는 것이고, 늙음은 걷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며, 죽음은 걸음이 중단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걷는다’는 것은 우리 삶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봇짐인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 어떤 이름, 어떤 기도를 마음에 담고 걷느냐에 따라 우리온 생애의 걸음이 바오로처럼 치유의 길, 평화의 길이 될지 결정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김영희 수녀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소속으로 네팔의 포카라 빈민가에서 어린이 공부방(St. Paul Happy Home 생 폴 해 피홈)과 방문 진료소(St. Paul Mobile Clinic)에서 동료 수녀들과 일하고 있다. 《용서보다는 의화》라는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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