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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6년 12월호][말씀이 내게 왔다]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_이근상
제목 [성서와함께 2016년 12월호][말씀이 내게 왔다]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_이근상
작성자 성서와함께 (ip:)
  • 작성일 2016-11-21 10: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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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함께 2016년 12월호][말씀이 내게 왔다]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_이근상




말씀이 내게 왔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이근상 시몬




더운 나라 미얀마도 성탄은 즐겁다. 두툼한 산타 옷은 없지만, 조그만 선물도 있고, 아이들과 청년들의 들뜬 분위기도 있다. 성탄 풍경은 세상 어디나 똑같다. 여기는 일 년에 삼 계절, 더운 여름(hot summer), 더 더운 여름(hotter summer), 가장 더운 여름(hottest summer)이 있다고 하는데, 성탄은 그냥 더운 여름에 속해 있으니, 날씨도 그만하면 아침저녁으로 견딜 만하다. 더군다나, 성탄 무렵 시골 본당으로 지원을 나가기라도 하면, 운이 아주 좋은 셈이다. 미얀마의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산간 오지에 사는데, 더운 여름철(12월-2월초)에는 제법 쌀쌀하여 난방이 없는 목조 건물 방에서는, 새벽에 입김이 서린다. 간만에 땀이 나지 않는 날씨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미얀마 북부 카친주의 주도인 미찌나의 주교좌 성당에 도착한건 성탄 사흘 전이었다. 내게는 근처의 고아원과 작은 공소들이 맡겨졌다.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씻으려고 하니, 아이 하나가 더운물이 반쯤 담긴 양동이를 가져왔다. 아이가 가져온 물에는 안쓰러운 추위가 배어 있다. 얼른 씻고 아이를 따라 나섰다.


고아원은 성당 바로 옆이었다. 어둑한 모퉁이 뒤, 아이들 스무 명 남짓 살 만한 작은 집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이들이 일제히 ‘해피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했다. 새벽을 쾅 때리는 큰 소리였다. 수녀님들이 아이들에게 열 번 정도 훈련을 시킨 목소리였다.


작은 방에 무려 백오십 명의 아이가 있었다. 사위가 아직 어두운 새벽, 방 안에 매달린 작은 전등 몇 개는 감질나는 빛이었다. 오히려, 다닥다닥 붙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불빛인지 눈빛인지 순한 빛이 반짝거렸다. 아이들의 얼굴이 먹먹하게 다가온 뒤에서야, 트리를 흉내 낸 장식들에서도, 진한 밤색의 나무판에서도, 방 안 구석구석에서도 부드러운 빛이 조심조심 새어 나오는 듯했다.


더듬더듬 미얀마 말로 인사하고 미사를 올린 후,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었다. 처음에는 머리에 손만 얹어 주다가 점차 아이 하나하나를 안아 주었다. 손만 얹기에는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전쟁 중에 부모를 잃었거나 아니면 부모가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이렇게 제법 큰 도시로 보내진 것이라고 했다. 십칠만 명의 난민이 미얀마 내전으로 집을 떠난 상태다(2015년 통계). 하지만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의 수는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살아 있거나 죽은 숫자에 치여, 다른 숫자를 헤아릴 손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잘 웃었다. 배시시 웃고, 크게도 웃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는 아이들도 많다. 한국 드라마 덕분이다. 한류 덕분에 미얀마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아왔는데, (미얀마 내전)난민들에게까지 ‘안녕하세요’, ‘오빠’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아이들은 TV로만 보던 코리안이 왔다며 즐거워한다. 물론 TV에 나오는 매끈한 한국인이 아니어서 실망은 좀 되겠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럼에도 미찌나의 아이들은 한국의 유명 배우가 온 듯 환호하고, ‘안녕하세요’를 연발한다. 선물을 주는데도 ‘안녕하세요’ 한다. 크리스마스에 한국 신부님이 뭘 주었다는 게 기쁜 모양이다.


나로서는 ‘송구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이럴 때마다 ‘내가 좀 더 착한, 바른 신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자책을 한다. 나로서는 이런 모든 환대가 난감한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리 좋은가 보다. 빛이 자기 빛을 보듯, 아이들의 빛이 내게서 내 빛이 아니라 그들의 빛을 본다고밖에 달리 이해할 수가 없다. 빨간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빨갛듯, 아이들 빛의 안경이 나도 그들 빛으로 보이게 한다는 말이다.


성탄은 빛이며, 희망이며, 기쁨이다. 구세주가 세상에 오셨으니 말할 것도 없는 참 기쁨이다. 하지만 이천 년 전 성탄에는 희망도, 기쁨도 없었다. 마치 미찌나 고아원의 침침한 방처럼, 너무 허술한 탄생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있었을 뿐이다. 참 빛이 왔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만연한 폭력과 전쟁의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인다. 어둠을 뚫고 빛이 오셨다고 여전히 기념하지만, 그날, 그 빛은 기다리던 큰 빛이 아니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같이, 작고 작은 빛이 왔을 뿐이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하느님의 시선이 아니고서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는 말씀이다. 큰 깨달음, 수많은 고행과 기도 뒤에야 커다란 빛을 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부모와 떨어져 비참한 삶으로 내몰린 어린아이의 눈에, 그 순한 빛에, 아무것도 아닌 이에게서조차 하느님의 선물을 보고, 기쁨이 되는 그 가난한 빛으로 세상을, 하느님을 본다는 말씀이리라.



이근상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2007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5년간 미얀마에서선교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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